저는 2020년 초부터 2024년 12월 25일까지 비기독교인으로 보냈습니다. 기독교인 정체성이 없는 건 아니었고 주변에서 저를 볼 때도 여전히 기독교인인 무언가로 보았지만, 저 혼자는 기독교와 벽을 쳤고 나름대로 종교적으로 치우치지 않은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노력한 게 이 모양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요.
냉담자로 살면서 마음에 공허한 게 있지는 않았고, 의지할 대상이 없는 불안함이 있지도 않았고, 마음에 하나님/하느님이 없었기에 특히 정병이 심하게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신을 더이상 믿지 않기로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여태껏 배워온 교리가 정말 맞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과 개신교적 가스라이팅의 산물인 지옥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어느정도 해소되고 나서야 저는 진정한 의미로 종교를 선택할 수 있겠다는 성찰을 했습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종교적 행위'를 해보려고 했습니다. 평소에는 <논어>를 열독하고, 석가탄신일에 절도 가보고, 친구 따라 미사도 가보고, 개신교 교회라고 하면 코로나 시기에 향린교회 비대면 예배를 한두 주 정도 보았습니다.
시간이 약이라고 변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는 크리스마스라는 냘이 너무 싫었고 크리스마스에 예배도 미사도 섹스도 할 일이 없기에 다른 날과 동일하게 취급했습니다.
작년에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친구와 놀고, 평범하게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덕담 주고받으며 케이크를 자르면서 새해를 기다렸습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24일 밤과 25일 낮에 미사를 보러 갔었는데,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대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교리적인 무언가에 대해서도 어떤 거부감과 울렁거림이 느껴지지 않아, 이제야 저 스스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제가 여기 있는 것은 가정의 압박으로 인한 것도 아니요,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이나 하늘에 대한 양심으로 인한 것도 아니요,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이 그저 기쁘기 때문에 여기에 있다는 것을요.
아이 때의 신앙, 즉 어린이가 가정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25년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다른 방식으로 사고해야 하고 다른 방식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가 부모와 같이 살면서 부모를 대하듯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함께 사는 어른이 부모를 모시기도 하고 동시에 존경하기도 하듯, 자신의 시시콜콜한 문제들을 부모 앞에서 풀어 놓으나 그 문제들을 부모님이 마법처럼 나서서 직접 해결해 줄 거라고 바라지 않듯, 그렇게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최근 어머니와 살면서 가장 스트레스였던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또한 독립된 개인으로 살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와 시간을 주는 일.
우리 엄마는 못해주는 걸 하늘의 부모는 해 준 거라고요.
PS. 예장합동으로는 별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아요.